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4)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적 특성으로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주의’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먼저 제도로서의 국가를 기술한다. 우리가 바로 앞에서 살펴본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는 총체적 체계로서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인 국가와 그것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서술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그에 이어 ‘제2부 개인의 발견’에서 개인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부분의 독서로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제6부 윤리와 종교’를 읽기로 했었다. 이는 개인을 둘러싼 객관적 제도로서의 국가와 그 개인의 심성을 형성하는 도덕(습속)적·종교적 요소, 즉 신념체계를 먼저 살펴봄으로써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개인주의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을 둘러싼 구조와 내면을 검토한 후에 그것들을 응결한 제2부의 독서로 들어서려는 것이다.

제6부의 제목은 ‘윤리와 종교’(Sitte und Religion†)이다. 국가에 대한 탐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르크하르트는 인간 공동체의 “성격과 운명”이라고 하는 거대 서사가 “형성되는 깊숙한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그 공간에서 작용하고 있는 미시적 요소들을 찾아내는데, 이는 1부에서 보인 부도덕의 심연을 탐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대 이탈리아인들의 습속적 심연을 구축하는 요소들은 명예심, 노골적인 명성욕, 사슬에서 풀린 이기심, 야만성, 복수와 혈연의 원수갚기, 사법에 대한 내심의 경멸, 범죄 등이었다. 부르크하르트는 이 모든 요소들을 “발전된 개인주의”로 집약한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든 객관적인 것과 모든 종류의 제약과 법률에 맞서 자기 고유의 주권이라고 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명예심, 이익, 현명한 숙고와 열정, 체념과 복수욕을 마음 속에서 조율하여 독자적 결정을 내렸다.” 다시 말해서 부르크하르트가 규정하는 개인주의는 외부의 제약을 일체 물리치고 자신만이 절대적으로 사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자립성을 가리키는 것이거니와, 이 자립성은 “그 자체로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닌 필연적인 것이요, 이러한 자의식이 발전할 때에야 비로소 중세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근대적 선악개념, 즉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짊어지겠다고 하는] 윤리적 책임이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자립성이라는 정서(또는 심성)는 이탈리아 문화를 매개로 유럽의 모든 나라에 전파되었는데, 부르크하르트는 이를 “세계사적 결정”, 즉 세계사의 행정行程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태로 이해한다. 

이탈리아에서 종교의 사정은 어떠한가. 중세말 유럽인들의 무신앙(Unglaube)은 새삼스러운 주제가 아니고‡, 그런 까닭에 우리가 부르크하르트의 저작에서 “이 시기 이탈리아인들의 무신앙은 대체로 악명이 높았다.”와 같은 문장을 발견해도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 상황을 전제하고 부르크하르트는 “왜 이탈리아에서는 도이치에서와 같은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를 물으면서, 이탈리아의 실패는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임을 이야기하면서 알프스 너머에서의 사정과 이탈리아의 그것을 비교해 나간다. 그에 따르면 “북유럽에서 진지한 열성과 종교적 사명의식을 품고 있던 설교사들은 직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람들이었던 반면 남유럽 설교사들은 개방적이고 현실적이었으며 그들의 언어와 연설은 사람들에게서 큰 존경을 받았다.” 그렇지만 “최고의 참회설교사이자 예언자였던 페라라 출신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이미 1498년에 피렌체에서 화형을 당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사보나롤라의 이상은 “신정神政”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인들이 중시하는 사생활의 자유에도 적지않게 개입하여... 반대파들을 극도로 격분시켰다.” “참회설교사들의 영향력이 아무리 대단했어도, 그리고 사보나롤라가 수도사들에게 구제설교의 본분으로 돌아가라고 분명히 요구했어도 수도사들은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보나롤라의 시도가 실패했던 것은 이탈리아인들이 “개인에게만 열광”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신에게 간구하고 공물을 바쳐서 그의 마음을 달래는 고대의 이교적 풍습과 맞닿아 있는 가톨릭의 대중적 요소들이 이탈리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유골 숭배는 물론이고 종교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치 등은 사보나롤라의 질책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며,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적 태도인 “세속성”(Weltlichkeit)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의 세속성은 “진지한 추세”였다. 이는 우선 무슬림과의 접촉에서 시작된 관용과 중립의 태도, 고대의 문헌으로부터 읽어낸 철학적 통찰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핵심적으로 등장한 문제는 “하느님의 섭리가 인간의 자유 및 필연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사라진다고 주장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책, 즉 루크레티우스를 읽으면서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이 주장이 지지기반을 확보하면 마니교와 파테리아교보다 교회의 권력에 치명타가 될 것임을 교회측에서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장은 개인의 사후 운명에 교회가 개입하는 정당성을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테를 보자. 그는 ⟪신곡⟫, 지옥편 10곡에서 분명히 말한다: “육체와 함께 영혼이 죽는다고 생각했던 에피쿠로스와 그 추종자들이 자신의 무덤을 갖고 있다.”(13-15행) 이러면서도 단테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를 배제할 수 없다.(지옥편, 7곡, 67-69) 세상은 신의 섭리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영역이 있다. 냉혹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포르투나가 있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단테를 지나 인문주의자들에 오면 섭리가 부인되고, “적나라한 숙명론, 인과응보에 대한 부정, 드러날대로 드러난 자신들의 비참함”이 지배하게 된다. 

섭리의 부인과 포르투나의 득세는 고대의 점성술의 성행으로 이어졌다. “모든 종교에는 각각 정해진 숙명이 있다는 생각이 점성술을 통해 이탈리아 문화 속으로 들어왔다.” 이에 대해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모든 무신앙과 부도덕의 뿌리가 점성 신앙에 있음을 증명했다.” 굳이 피코의 반박이 아니라해도 “점성술이 여전히 만연했지만 이제는 옛날처럼 삶 자체를 지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회의의 정신과 의문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르크하르트에 따르면 “르네상스기의 숙명론자들은 힘찬 역동의 시대와 우울한 체념 또는 혁신의 시대를 오가며 방황”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개인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일반적인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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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처음 통독할 때는 저자의 논지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독서가 필수적이나 1차 통독 후 재독, 삼독을 할 때는 독자의 입장에서 재구성이나 비판의 관점을 가설적으로 세우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데, 이것이 비판적 독서이다.

† 종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이므로 논외로 하고, Sitte를 윤리로 옮기면 우리는 엄격한 윤리적 규범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상 이 말은 일관성있는 개인의 성정性情, 특정 인간 집단에서 통용되는 습속과 행동방식 전반을 폭넓게 가리키는 말이다.

‡ 이에 관해서는 뤼시앵 페브르의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가 참조할 수 있는 책이다.

§ 이는 신과 인간의 호혜(kharis)를 바탕으로 하는 고대의 숭배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로만가톨릭이 자리잡는 과정에서 기독교로 흡수된 것이다. 이 과정과 의미에 대해서는 후일 기독교의 역사에서 일별하기로 하자.

‖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포조 브라촐리니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사태에 관해서는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을 참조할 수 있다. 

¶ 피코Giovanni Pico della Mirandola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Oratio de hominis dignitate)에서 fortuna가 아닌 virtus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을 설파하여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철학적 지성임을 드러냈다.

** 여기서 부르크하르트가 제기한 논제들은 ‘개인의 자신감’으로써 설명을 마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경건/불경, 종교적 신념/미신, 천상에의 동경/지상의 열락 등과 같은 복합적 정서, 그리고 섭리와 포르투나, 자유와 필연의 문제는 철학적 문제이고 이에 대해서는 별론이 요구되거니와 에른스트 카시러의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 특히 ‘3장.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자유와 필연’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의 읽기는 부르크하르트에 대한 비판적 독서인데, 이것이 마무리되면 다른 참조서적과 대조하면서 교차적으로 읽는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카시러를 읽는 것이 그것에 해당한다. 축자적 독서, 비판적 독서, 교차 대조의 독서를 거치면서 독자는 고유의 입론을 세우게 되고 이것을 정리하면 논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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