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매튜 인물열전

닉 매튜 인물열전

Jul 26, 2021

최초 작성일: 2017년 9월.

The Wolf Nick Matthew, OBE.[오늘의 주인공, The Wolf Nick Matthew OBE. 뒤에 붙은 OBE는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아서 붙은 칭호다.]

스쿼시 종주국은 어디일까? 다들 아시다시피 잉글랜드다. 영국이라고 해도 무방하긴 하지만, 당사자인 잉글랜드 사람들이 들으면 발끈하면서 'no no no~ It's England!'라고 바로잡아(?) 줄 것이다. 참고로 영국은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 웨일즈가 합쳐진 나라다.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히스토리가 좀 복잡한데, 여하튼 알기 쉽게 앞으로는 '잉글랜드'로 칭하겠다. 닉 매튜는 잉글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성공한 잉글랜드 출신 스쿼시 선수'로 통한다. 만약에 이를 스코틀랜드로 한정한다면 피터 니콜이 되겠지만, 피터 니콜은 2001년에 스코틀랜드를 떠나 잉글랜드로 왔기 때문에 사실 좀 애매하다. 그냥 스코틀랜드이건 잉글랜드이건 '영국' 하나로 묶어서 얘기한다면 피터 니콜도 만만찮은데, 영국 자체에서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는 확실히 나누기 때문에 잉글랜드로 한정해보자. 얘들은 월드컵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다 따로 나간다.

1) 주니어 시절의 닉 매튜.
세계 랭킹 1위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닉 매튜는 어렸을 때부터 잘했다. 1998년 월드 주니어 대회에서 개인전 4강에 들었고 (당시 우승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레이시아의 옹뱅희), 잉글랜드 팀은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다음해 1999년에는 브리티시 주니어 오픈에서 우승하고 시니어 무대로 넘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난 놈' 이었다. 그러나 닉 매튜는 주니어 시절 개인전 우승이 윌스트롭에 비하면 많이 적다. 이 부분에서 윌스트롭과 비교되는데, 주니어 시절만 놓고 보면 윌스트롭의 커리어가 압도적으로 좋다. 주니어 시절의 윌스트롭은 한 마디로 '사기 캐릭터'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이대로 나눠서 만나는 주니어 어항을 떠나, 빗장 풀고 에브리바디 맞다이 뜨는 시니어 무대에서 둘의 만남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이 부분은 밑에 자세히 얘기하겠음.

2) 닉 매튜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프로 투어에 뛰어들었다.
닉 매튜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PSA 프로 투어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부분의 선수들은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고3 때 성적을 잘 내야 하는데, 잉글랜드는 우리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다. 이 부분은 어디가 맞고 그르냐의 문제보다는 각 나라별 문화와 환경이 다른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은 70% 지만 영국의 경우는 49%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도 사실 닉 매튜의 경우는 고3 나이 때 이미 프로에 들어가도 될 만큼의 경쟁력과 잠재력이 있었다. 나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곧바로 프로로 진출해서 돈을 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축구의 경우 고종수, 이청용 선수의 경우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 데뷔를 한 케이스다. 여기서 잠깐, 이 부분에서 흔히들 '이래서 우리나라는 다들 대학만 보내려고 해서 문제야~'라고 지적을 많이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 이런 추세다. 현역 은퇴 후를 생각해보면 대학 진학을 하는 편이 아무래도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해서 대학에 많이들 간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알리 파라그는 하버드 출신으로 유명한데, 공대 출신이다. 본인은 은퇴 후에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겠다고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프로 생활을 오래해서 그냥 이 바닥에 남아야겠다고 최근에 밝혔다. 사실 닉 매튜도 부모님은 대학에 진학하라고 했는데 닉 매튜 본인이 안간 경우다. 대신 닉 매튜는 부모님과 약속을 했는데, 3년만 프로 생활을 해보고 안되면 대학 가겠다고. 그런데 데뷔 후 약속한 3년이 지났을 즘 닉 매튜의 랭킹은 이미 30위권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 타이밍에 대학가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닐 수 있다. 닉 매튜 역시, 대학보다는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후 행보는 다들 아시다시피 닉 매튜는 세계 랭킹 1위를 찍은 선수가 되었다.

학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윌스트롭도 고졸이다. 고졸이라도 가디언지에 칼럼 잘만 쓰고 올린다. 윌스트롭이 올리는 칼럼은 스쿼시 칼럼이고, 아무리 세계 최고의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도 고졸인 윌스트롭이 이 분야에서는 최적의 칼럼니스트가 되지 않겠는가. 대학 졸업장 is not everything. 이 선수들에게 대학 간판은 큰 매력이 없었을 것이다. 근데 윌스트롭이 글을 잘 쓰긴 한다.

3) 잉글랜드의 자존심을 세우다.
스쿼시는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짧은 역사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고 널리 퍼지면서 '프로 스포츠'의 틀을 잡았다. 하지만 종주국 잉글랜드는 한 가지 고심이 있었으니, 바로 월드 오픈 우승이 없다는 점. 이거 종주국 체면이 말이 아니다. 1999년 피터 니콜이 월드 오픈 우승을 하긴 했지만, 당시 피터 니콜은 스코틀랜드 소속이었다 (피터 니콜은 2년 후인 2001년에 잉글랜드로 소속을 옮긴다). 엄밀히 말하면 잉글랜드의 우승은 아니었다는 얘기. 즉, 종주국이면서 월드 오픈을 우승하지 못한 국가라는 쪽팔림을 겪어왔던 잉글랜드. 하지만 닉 매튜의 등장으로 자존심을 세우게 된다. 80-90년대를 주름잡던 자한기르 칸, 잔셔 칸이 가고, 피터 니콜 - 조나단 파워 라이벌 시즌이 가고, 이제 좀 잉글랜드가 힘 좀 써보려고 했더니, 이집트가 사바나를 앞세우며 스쿼시 강국으로 등장해버렸다. 사바나 이후 다시 좀 해보려고 했더니 이제는 찍신 라미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잉글랜드에게 월드 오픈 우승의 기회가 영영 안 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때는 2010년, 닉 매튜와 제임스 윌스트롭이 함께 결승에 올라가며 둘 중 아무나 이겨도 잉글랜드가 월드 오픈 우승을 하는 상황이 나와버렸다. 잉글랜드 스쿼시 협회는 축제 분위기였고, 선수 입장에서는 잉글랜드 최초의 월드 오픈 우승 선수가 되고 싶었을 것인데, 이 경기에서 닉 매튜가 3-1로 역전승하며 잉글랜드는 드디어 월드 오픈 우승을 맛보는 국가가 되었다. 이후 닉 매튜는 2011년과 2013년에 월드 오픈을 다시 우승하면서 잉글랜드를 3회나 월드 오픈 우승을 한 단골 국가로 만들어준다. 쓰리고!

4)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다.
2009년 경부터 닉 매튜는 전성기였다. 고질적인 어깨 부상도 없어졌다. 파워, 스피드, 정확도 모두 다 갖췄다. 2009년 이전까지는 단 2회에 그쳤던 메이저 대회 우승 타이틀이 이제부터 많아지기 시작한다. 2009년 참가한 8개의 대회에서 4번의 우승 + 2번의 준우승을 만들며 랭킹 포인트를 쌓았고, 이를 발판으로 2010년 6월 드디어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선다. 이후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서 위에 말한 월드 오픈도 우승하고 2012년에 TOC를 우승하고, 2013년에 홍콩 오픈을 우승하면서 메이저 대회 우승을 모두 달성해버린다. 이런 경우 그랜드 슬램이라고 테니스에서는 칭하는데, 스쿼시는 아직 이런 용어가 정립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만, 만약에 있다면 닉 매튜는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5) 그건 그렇고, 듣보잡(?) 라켓 슬레진저 - Slazenger.
슬레진저라는 브랜드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지 싶다. 그냥 간단하게 스포츠 용품 브랜드 중 하나다. 닉 매튜는 던롭 라켓을 사용하기 전까지 슬레진저 라켓을 사용했고, 이런 '듣보' 라켓을 들고 브리티시 오픈(2006년)과 US 오픈(2007년)을 우승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 한 가지 - 라켓 브랜드는 의미 없고 결국은 그 사용자가 중요하다는 것.[브리티시 오픈에서 티에리 링쿠와 경기를 하고 있는 닉 매튜. 라켓도 옷도 슬레진저 브랜드이다.]

이후 닉 매튜는 2009년 던롭과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이제부터 던롭 라켓을 들고 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위의 슬레진저가 던롭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1959년 슬레진저는 던롭에 합병되었음), 슬레진저에서 던롭으로 옮기는 것은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핵심은 계약 규모다. 위에 '초대형' 계약이라고 적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보면 닉 매튜와 던롭이 맺은 계약은 역대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총 계약 기간은 4년, 가치로 보면 연간 $60,000 정도로, 4년을 모두 합치면 총 $240,000. 당시 환율로 보면 대략 2억 8천만 원이다. 저 당시 스쿼시는 지금처럼 PSA TV가 있어서 어지간한 메이저 대회 중계를 손쉽게 볼 수 있던 때도 아니었고, 스쿼시가 비인기 종목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약 3억원짜리 계약이 나온 것이다. 참고로 던롭은 냉정해서, 사실 던롭뿐만 아니라 거의 다 그렇지만 본사에 이익이 많지 않다고 판단되면 재계약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일례로 라미와 사바나가 그렇게 해서 던롭과 바이바이하고 라미는 프린스로, 사바나는 Eye 라켓으로 간 사건이 있다. 이 둘을 놓친 것은 던롭의 판단 미스인 듯싶다만. 이런 부분은 던롭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 회사 입장에서는 이익 추구가 우선이니깐. 여하튼, 던롭과 스폰서쉽 계약을 맺은 닉 매튜는 이제부터 던롭 에볼루션 120을 들고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던롭 에볼루션 바이오미메틱의 1세대 라켓 되겠다. 사진은 아래에. 물론 저 당시 이름은 바이오미메틱이라고 붙이진 않았지만 라켓 프레임 모양은 현재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깐 1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나도 사용했던 라켓인데, 이거 정말 좋은 라켓이다.]

그 후 2013년 닉 매튜는 던롭과 재계약에 성공하며 은퇴 후까지도 던롭과 함께 하고 있다. 은퇴 직후 다시 재계약에 성공함. 닉 매튜 클라스. '던롭'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오래된 스쿼시 동호인이라면 조나단 파워를 꼽을 것이고, 최근에 시작한 사람이라면 닉 매튜 혹은 그레고리 고띠에를 꼽지 싶다.

6) 운동이 바빠도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지요.
선수 사적인 부분은 그렇게 많이 쓰고 싶지 않은데, 이왕 인물열전 쓰는 거 그냥 한 줄만 적어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사이클팀 물리치료를 전담하고 있던 Esme Taylor라는 여자를 만나서 2013년에 결혼해서 딸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 닉 매튜. 선수 사생활은 이거로 간단하게 끝낸다.

7) 대영제국 훈장을 받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닉 매튜는 결국 2015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OB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게 된다. 월드 오픈 우승이 없던 종주국 잉글랜드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거기에 월드 오픈 우승을 3번이나 쓰리고로 해줬는데, 이만하면 훈장 받을만하다고 본다. 사실 닉 매튜 이전에 피터 니콜 역시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긴 했는데, 닉 매튜보다 한 단계 아래인 MBE 훈장이다. 참고로,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도 닉 매튜와 동급인 OBE 훈장을 받았다. 스쿼시도 어디 가서 꿀릴 것 없다.

8) 잉글랜드 라이벌 - 제임스 윌스트롭.
유명한 스토리다. 닉 매튜는 80년생, 윌스트롭은 83년생으로 둘이 주니어 때는 서로 맞불을 일이 없었다. 주니어 때의 성적을 보면 윌스트롭이 넘사벽으로 앞선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윌스트롭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 예상대로 프로 데뷔 3년 만에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 버렸다. 이에 반해 닉 매튜는 탑10에 들어가기까지 6년이 걸렸다. 프로 데뷔는 닉 매튜가 먼저 했지만 2005년에는 윌스트롭의 랭킹이 높았던 적도 있다. 잉글랜드는 리 비칠 이후 닉 매튜와 윌스트롭이라는 원-투 펀치가 등장하며 계속 스쿼시 강국으로 남는데, 정작 이 둘은 사이가 껄끄럽다. 치고받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냥 둘이 막 친한 것은 아니고, 서로 디스도 가끔 하고 그러는데, 암튼 사이는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잉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 단체전을 뛸 때는 같이 뛰고, 공과 사는 확실히 따로따로 하지만 어디 대회 나가서 둘이 호텔 같은 방 쓰라고 하면 둘 중 한 명, 아님 둘 다 각자 방 따로 구하겠다고 나갈 사이라는 점. 암튼, 이 둘은 PSA에서도 많이 맞붙게 되는데, 상대 전적 승률은 닉 매튜가 높았다. 닉 매튜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윌스트롭이 대진표 반대쪽에서 전부 무찔러주고 결승에서 닉 매튜랑 만나는 것이다. 왜냐면 닉 매튜는 윌스트롭을 상대로 엄청난 승률을 보였는데, 2007년 이후로 PSA 투어에서 윌스트롭한테 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PSL 경기에서는 윌스트롭이 닉 매튜를 꺾기도 했지만). 라미, 쇼바기, 고띠에 두루두루 다 잘 잡는 윌스트롭이 이상하게 닉 매튜만 만나면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10년간 이어졌다. 그러다가 2017년 1월, 윌스트롭이 10년간 이어지던 vs 닉 매튜 19연패 사슬을 끊고 드디어 승리하게 된다 (이것도 5게임까지 갔다).

9) 게임 스타일.
닉 매튜의 게임 스타일은 본인도 밝혔듯이, 게임을 진행하면서 상대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이집트 선수들은 그냥 바로바로 닉에 꽂아서 끝내는 스타일이라고 얘기했고. 이집트 스쿼시 특징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 듯. 닉 매튜는 힘으로 강하게 쳐서 빨리 끝장 보는 스타일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선수를 상대로는 그 말이 맞다. 하지만 4강전 이상에서 대등한 상대와 게임하는 닉 매튜를 보면 전통적인 잉글랜드 스타일의 스쿼시를 고수한다. 물론 공을 강하게 치는 스타일임은 본인도 인정하긴 했다. 대신 골프는 살살 친다고 하는 닉 매튜. 닉 매튜 게임 스타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애매한 렛은 그냥 밀고 들어가서 치고 랠리를 되도록이면 이어간다는 점. 물론 스트록은 칼같이 잡는다 당연하지 점수인데. 이 부분이 관중 입장에서는 매우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랠리가 좀 길게 가려고 하는데 불필요한 렛을 잡아가며 흐름을 끊는 경우를 보면 사실 관중 입장에서 재미가 반감되니깐. 물론 이 부분을 경기 전략으로 보면 이해가 가긴 하지만, 크게 놓고 볼 때 렛을 줄이면 경기의 재미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WSF는 사소한 접촉은 노렛으로 처리하도록 규정을 바꿨으며, 미국의 PSL (위에 윌스트롭이 닉 매튜를 이겼다는 PSL과는 다른 리그) 에서는 경기당 렛을 5개로 제한하는 시도와, 아예 렛 없이 노렛 아니면 스트록만 판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까지 했을까. 이럼에도 불구하고 뻑하면 렛을 잡던 조나단 파워가 그렇게 높은 인기를 끌었던 점은 정말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암튼, 닉 매튜는 이런 '불필요한' 렛은 안잡고 본인이 칠 수 있으면 어지간하면 들어가서 친다. 그리고 닉 매튜의 장점 중 다른 한 가지는 '어필' 부분 이다. 레프리 판정이 좀 이상해서 문 열고 나와가지고 어필 좀 하다가, 이거 좀 안되겠다 싶으면 문 딱 닫고 들어가서 그 이후로 어필 절대 안한다. 대신 상대방을 말 그대로 '패 죽이는' 게임을 해버린다. '렛/스트록 따윈 필요 없다, 그냥 두들겨 패서 점수 내면 되는거 아니겠나' 하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다. 닉 매튜 상남자다. 아마 이렇게 조용히/외롭게 상대를 압살하는 모습에서 그의 별명 'The Wolf'가 나오지 않았나 한다.

10) 닉 매튜 스쿼시 아카데미 (https://www.futuresquashstars.com).
은퇴 후 선수들의 진로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다. 닉 매튜 역시 본인의 이름을 딴 아카데미를 열었다. 이름하여 닉 매튜 스쿼시 아카데미.  2016년에 오픈했다. 매우 잘 되고 있다. 잉글랜드의 조지 파커가 현재 닉 매튜의 지도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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