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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풍설서

📖 네덜란드 풍설서

Feb 19, 2024

마쓰카타 후유코松方冬子, ⟪네덜란드 풍설서 - ‘쇄국’ 일본에 전해진 ‘세계’⟫(オランダ風説書 - 「鎖国」 日本に語られた 「世界」, 2010) 

  • ‘네덜란드 풍설서’라는 주제가 가진 의의

“제가 네덜란드 풍설서를 재미있는 테마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풍설서가 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가를 말하자면 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네덜란드 풍설서를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로부터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 때에 생겨나는 흥정이나 오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신뢰 관계 등이 읽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고 느낍니다.”

🎧 https://www.podbean.com/ew/pb-vdhef-1542cd0

❧ 보론: 통역과 ‘네 개의 창구’

  • ‘간에이’(寬永) 쇄국’에서 막말幕末의 개항에 이르기까지인 1640-1859년대에 통역이라는 행위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통역 담당자, 통사通詞(또는 通辭, 通事)는 양자의 사회적 문맥에 맞춰서 발췌 번역이나 고의로 바꿔 말하는 일을 수행. 드나드는 정보를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체제

  •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통사는 독해력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어를 습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에도 시대에는 한학의 보급에 의해 지식인층의 한문 소양이 높아졌으며, 이는 복잡한 개념을 일본어로 표기하는 가능성을 확대. 선행하는 이러한 작업을 전제로 네덜란드어와 같은 근대 유럽 언어를 일본어로 ‘번역’(정확하게 말하자면 번역어를 생성하는 일)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 쓰시마(対馬) 창구

    • 중세 이래 한반도와 일본 열도와의 교류를 중개

    • 초기의 통사는 임진왜란 시기의 전시 통역. 포로 심문, 길 안내 등. 연안부에서의 상업활동이나 의례적인 교섭과는 질적으로 구분

    •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통사는 없었다. 중국 고전이라는 공통의 문화적 바탕. 부산 왜관으로 건너간 일본인들은 조선어를 말할 수 있었고, 조선 남해안 지방 사람들도 쓰시마 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 1800년 전후 쓰시마번의 통사와 조선의 역관 사이에 주고받은 왕복 서신은 한자와 한글이 섞인 조선어, 통사끼리의 회화는 기본적으로 조선어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사쓰마(薩摩) 창구

    • 류큐와의 교섭 통로, 동시에 류큐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경계’

    • 류큐 왕국의 사족은 일본어, 한어漢語의 소양을 갖추고 있었고 양쪽의 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어서 비전문가 통역으로도 충분. 사쓰마·류큐는 통사에 의한 언어의 독점이 약하고 한문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쓰시마·부산과 유사

    • 류큐에는 중국과의 통역을 담당하는, 중국인 후예라는 자각을 가진(가보家譜를 통해 스스로가 중국 출신임을 계속 확인) 통사들이 있었다. 

  • 마쓰마에(松前) 창구

    • 아이누와의 관계를 관장하는 창구. 에조(蝦夷) 통사가 담당

    • 아이누가 일본어를 학습하는 일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으며 아이누가 공식적인 장소에서 일본어를 말하는 것은 금지

    • ‘일본어적 아이누어’. 피진어를 만들어 내는 일반적인 방식인 군사적·경제적으로 우세한 언어[일본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아이누어에 일본어를 덧입힌 것. 에조 통사가 만들었으리라고 추정

    •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하려고는 했지만, 아이누 쪽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 나가사키(長崎) 창구

    • 통킹, 샴 사람 등을 포함하는 당인唐人과 독일·스웨덴인 등을 포함하는 네덜란드인과의 관계 담당

    • 각각의 상대에 대응하는 통사들이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들은 직장 언어로 네덜란드어 사용, 포르투갈어, 영어 등 다른 유럽 언어에 능한 사람들 포함

    • 상관商館이 히라도(平戸)에서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로 옮겨오면서 통사는 나가사키 부교(奉行)의 감독 아래 놓이고 네덜란드인들은 공식적인 장소에서 일본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통사를 거치지 않은 교섭이나 접촉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나가사키 당국의 독점을 유지하려는 목적. 부수적으로 네덜란드인들에 의한 기독교 포교 방지

    • 통사들은 막부의 명령에 따랐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여 행동. ‘일본식 네덜란드문’ 사용

🎧 https://www.podbean.com/ew/pb-2fn5v-15445e4

 ❧ 풍설서의 유형, 원문 문제 

  • ‘통상’ 풍설서. 작성시기는 1641-1857, 네덜란드어 원문 없음, 작성지는 나가사키 

  • 별단 풍설서(Apart Nieuws). Apart에는 ‘별도’와 ‘특별한’ 두 가지가 의미가 포함. 두 번의 중영전쟁 시기(1840-1857)에 정청政廳의 결정·결의에 기초하여 바타비아에서 작성된 서면이 일본으로 보내진 것, 즉 정청이 선택한 정보들


❧ 정보 집산지로서의 네덜란드, 동서양의 정보 유통 

  • 17세기 네덜란드는 상인층이 지배 권력을 장악,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인쇄업의 융성. 18세기에는 영국이 정보 생산 유통의 중심지 

  • 바타비아를 중심으로 한 정보망. 네덜란드는 시사 정보를 각 상관에 배포. “한 번 일본에 들어오고 나면 비밀정보로 취급되기도 한 19세기의 풍설서이지만 일본에 오기 전에는 비밀도 무엇도 아니었다. 저렴하고 간단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공공연한 정보였던 것이다.” 

  • 참조. 피터 버크Peter Burke, ⟪지식의 사회사⟫(A Social History of Knowledge, 2000) 


❧ 막부가 정보를 수집한 배경

“자신들의 군사력이 외국에 통용되지 않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막부였다. 유럽 선박의 공격을 받으면 본격적인 반격이나 추격은 할 수 없다는 인식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관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게끔 사전 정보를 필사적으로 구했던 것이다. 지진에 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진 예지에 힘을 쏟는 형국이다.”

🎧 https://www.podbean.com/ew/pb-sd56p-15460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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